2020년 6월 16일 화요일

아버지와 컴퓨터



부모님께서 처음 내게 사주신 컴퓨터는 1990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받은 컴퓨터이다.  브랜드는 기억 안나고 16비트 MS-DOS 운영체제였다. 컴퓨터학원에서 GW-Basic 언어로 도형그리기 같은걸 배웠고, 소리내는 함수 이용법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소리 기능을 이용해 엄마가 좋아하시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의 멜로디를 짜서 들려드렸고,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멜로디만 있는 단순 8비트 사운드였지만 얼마나 칭찬을 해주시던지, 또 칭찬은 어찌나 기억에 잘 남는지!

물론 나중엔 이 컴퓨터로 이 게임을 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다음으로 부모님이 사주신 컴퓨터는 아마 1996년(고1) 정도였던 것 같다. 브랜드는 삼보였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고, 검은색 외관을 가진, 펜티엄1을 단 기기였다. 운영체제는 Win95와 MS-DOS를 오가며 사용했고, 메모리 부족으로 인해 시작프로그램을 줄인다던지(autoexec.bat), 게임 세이브파일이나 메모리를 패치하는 등 재밌게 잘 썼다. 물론 나중엔 나우누리, 워크래프트2, 스타크래프트에도 혹사되고 처음으로 내손으로 부품도 갈아보았다. 무려 1MB짜리 음원을 나우누리에서 받아 재생하는데 엄청 힘겹게 재생했던.. 추억의 컴퓨터. 그 때 틀었던 1MB짜리 음원은 조pd의 'break free'.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컴퓨터는, 군 제대 후 복학할 때 부모님께서 사주신 컴퓨터인데, 다나와에서 짧은 지식으로 엄청 검색한 뒤 아버지께 입금을 부탁드려 산 조립컴퓨터이다. 이전에 부모님께서 컴퓨터를 사주실 땐 '아싸 컴퓨터~' 이런 심정이었음에 반해, 제대 후 이 컴퓨터를 살 때는 정말 부모님께 죄송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컸다. 아버지께서 시작하신 사업이 잘 안되어서 느끼고 계신 심적부담을 느끼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직도 기억한다. 컴퓨터가 집에 도착해서, 조립을 마치고 아버지 차에 컴퓨터를 싣고 함께 기숙사로 왔다. 책상에 컴퓨터를 설치할 때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심리가 반영된 시선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뿌듯함이 넘쳐나 나에게도 밀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나도 조금 이해한다. 내가 선물한 옷과 장난감 때문에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세상에 이런 행복감이 없다.  받은 아이들보다 내가 훨씬 더 행복한..  그 때도 아버지는 내가 컴퓨터를 설치하는 모습을 보시며, 나보다 더 행복해 하셨을까?

아버지 어머니에게 뭘 선물해 드리면 그 때 내가 받았던 것들을 되갚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딱 한 가지 있다. 그리고 이미 드렸다. 그건 바로.. 손주들.ㅋㅋ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입으로 말 못하는 쑥스러운 아들이지만 정말 사랑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